미국성공회 총회(General Convention)를 다녀와서

포용성과 예의바름이 큰 조화를 이루어 내고...

지난 2009년 7월 6일(월(부터 15일(수)까지 9박 10일 일정으로 미국성공회 총회에 다녀왔다. 이번 방문은 미국성공회 관구(The Episcopal Church Center)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최근 세계성공회는 미국성공회의 동성애 주교 서품문제로 심한 홍역을 앓고 있는바, 미국성공회가 처한 독특한 상황과 그에 다른 결정과정의 신중함을 세계성공회에 알리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주교님들과 주요 성직자들이 초청되었다. 약 15명의 관구장 주교들과 28명의 주교들이 초청되었고 미국성공회와 협력하고 있는 해외관구 및 교구의 성직자들 15명이 초대되었다. 물론 우리 대한성공회에서는 윤종모 주교님이 관구장으로서 초청받았고 2007년 평화대회 이후 대한성공회 평화통일선교(TOPIK)의 후속활동에 대한 홍보 요청으로 실무를 맡고 있는 김요아킴 신부가 초청받아 방문하게 되었다.
미국성공회 총회는 그 규모면에서 압도적이었다. 하루 인원 1만 명이 움직이는 대규모 총회였다. 총회가 열린 아나하임(Anaheim)은 디즈니랜드로 유명한 곳인데,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호텔들이나 모텔들이 총회 참석자들로 가득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미국성공회 총회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크다고 한다. 첫째는 공화당 전당대회이고 둘째는 민주당 전당대회이고 그 다음이 성공회 전국총회라고 한다. 총회에는 110개 교구의 대표들이 참여한다. 880명의 공식대의원과 동수의 대체가능대의원(Alternative), 그리고 전․현직 주교님들 약 320여명이 참여한다. 또한 전국총회 때는 전국여성대회도 함께 열리는데, 전국 여성단체 대의원 375명이 참여한다. 이 이외에 다양한 부스들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장이 연일 운영되고 있는데 하루 수백 명이 상주하고 있고 전국총회를 위해 동원된 자원봉사자 규모까지 간주해서 대략 1만 명이 오가는 대규모 총회이다. 더구나 놀랄만한 사실은 이렇게 큰 규모의 총회를 2주 동안 진행한다는 점이다.
이번 총회의 주제는 우분트(UBUNTU)였다. 이 말은 아프리카 말로 ‘내가 네 안에 그리고 네가 내 안에’(I in You and You in Me)라는 뜻이다. 상호 친밀한 관계성을 의미하고 하나됨의 조화를 의미하는 말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고 다양한 나라에서 모였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요, 한 몸이라는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우분트의 정신을 채워 나가려는 노력이 여실했다. 매일 진행하는 예배 속에서, 매 순간 진행되는 회의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언제나 그러했듯이 상호이해와 배려의 노력이 엿보였다. 총 10차례의 예배는 미국성공회 형제들이 우분트의 정신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우분트와 그리스도의 몸’, ‘우분트와 하느님의 백성’, ‘우분트와 일치’, ‘우분트와 환대’,‘우분트와 선교’, ‘우분트와 사회적 행동(국내적 빈곤문제)’, ‘우분트와 사회적 행동(MDGs)’, ‘우분트와 창조물에 대한 돌봄’, ‘우분트와 복음주의’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분트로 살기’등이 각각의 예배 주제들이었다.

우분트의 정신은 총회 자체에도 여실히 묻어났다. 통역자로 참석하신 주인돈 신부님의 표현대로 총회는 공동체의 집적된 지혜가 모이고 합의가 창출되며 새로운 전통이 형성되는 곳이었다. 의안이 상정되고 논의되고 합의․결정되는 과정이 참으로 지난했고 신중했다. 힘의 논리로 처리되거나, 시간에 쫓겨 처리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의안 상정은 4곳에서 이루어진다. 총회가 인정한 각종 위원회, 주교원(House of Bishop), 각 교구의회 그리고 평신도와 성직자가 함께 대의원으로 참여하는 대의원회(House of Deputy)에서 상정된다. 이번에 상정된 안건만 해도 442여개가 넘는다. 이렇게 상정된 의안들은 모든 대의원들과 주교들에게 배부되고 각종 위원회를 통해 공청회를 갖는다. 그리고 공청회를 통해 심의된 안건이 총회에 상정되고 주교원과 대의원회에서 각각 토론과 논의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으로 최종 결정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어느 한 원에서 가결된 의안은 반드시 다른 원에도 상정되어 가결되어야 한다. 만약 가결되지 않을 경우 의안은 되돌려지게 되고 수정안을 만들어 재차 의결과정을 밟게 된다. 의안이 가결되기 위해서는 양원이 모두 의안에 찬성하여야 한다. 매우 힘든 과정이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들의 지혜를 모으고, 합의된 의견을 도출해내며, 그것을 존중하는 성숙한 공동체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을 경험한다.

사실, 미국성공회가 해외성공회 주교님들과 사제들을 초청한 이유는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어느 하나의 의안 결정이 결코 소수에 의해 이루어진다든지, 공동체 전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동성애와 관련된 일련의 문제들 역시 매우 신중한 절차에 의해 다뤄지고 있었다. 물론 총회에 머무는 동안 이 의안에 대한 최종 결정이 무엇이었는지 듣지는 못했지만 주교원과 대의원회를 오가며 논의되는 모습 속에서 미국성공회 내적으로나, 세계성공회와의 관계에서나 ‘우분트’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미국성공회 의장주교 제퍼트 쇼리 대주교는 연일 선교에 대해 강조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선교에 관해 논의하는 세션에는 항상 자리를 함께 하였다. 미국성공회는 결코 미국만의 성공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미국성공회라는 이름도 바꾸었다. 예전에는 ‘The Episcopal Church in U.S.A’라고 썼지만 지금은 단지 ‘The Episcopal Church’라고 쓴다. 이미 미국성공회 내에도 소수민족들이 한 주체로 참여하고 있고 국적을 달리하는 성공회들이 미국성공회의 한 지체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미국성공회는 미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성공회 내 형제 자매들이 처한 상황을 직시한다. 빈곤, 질병, 인권 등 어려움에 시달리는 지체들을 위해 행동하기를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세속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우리 교회가 나서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전세계적인 경제위기 앞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교회의 사명임을 강조하였다.

낯선 곳, 그러나 더 낯선 총회에 다녀왔다. 우리 경험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접한 심정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나, 그 어디에도 혼란스러움은 없었다. 다양함을 포용하며 그 안에 일치를 이루어가려는 모습이 오늘의 미국성공회를 일구었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상호 존중과 배려, 예의바름이 무엇인지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대의원회가 개회할 때, 주교원 대표들이 인사하러 왔다. 그러자 나비넥타이를 한 대의원회 부의장이 입구까지 마중하며 정중히 안내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형식처럼 보이는 이러한 조그만 예의바름이 총회를 통해 공동체 전체의 의견을 만들어가는 힘이 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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