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과 압록강 접경지역을 다녀오다.

TOPIK에서는 지난 2009년 5월 11일(월)부터 18일(월)까지 7박 8일의 일정으로 두만강과 압록강 접경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이번 방문사업은 경색일로의 남북관계 속에서 평화감수성 증진을 위한 평화기행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대북 인도적지원사업을 위한 새로운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이번 방문에는 TOPIK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상윤 신부, 임병규 위원 그리고 김현호 신부가 참여하였다.

1. 북한을 한 바퀴 도는 순례의 여정 : 이 땅의 반쪽이라 할 수 있는 북한을 한 바퀴 도는 기회가 되었다. 서울->속초->자루비노(러시아)->훈춘(중국)->연길(조선족자치구)->용정->두만강변->백두산->이도백하->통화->집안(궁내성)->압록강변->단동->인천->서울로 이어지는 여정으로 북한을 외곽에서 한 바퀴 돈 셈이다. 북한을 외곽에서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한국사람들, 러시아사람들, 중국 한족들, 중국 조선족들, 북한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땅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실체였다.

2. 연해주, 한인들의 숨결과 한(恨)이 느껴지는 곳을 밟다.
1858년, 지금으로부터 146년 전 아이훈(愛暉)조약 이후 1860년대를 거쳐 오면서 시작된 한인들의 연해주 이주는 1902년 한인들의 이민자 수는 32,380명, 1914년 한인 교민수 6만3천여 명, 1923년 재소(在蘇)한인 공식 10만여 명 실제는 25만 명이상이 거주하였다. 그러나 1937년 9월 21일 스탈린의 원동변경지역 고려인 이주에 관한 일급비밀지령에 따라 중앙아시아(6천km)로 강제 이주된다. 1860년대에 연해주로 이주한 초기의 한인들은 대부분 함경도지역 출신이었다. 1880년도부터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이들은 순전히 배가 고파 먹고 살기위하여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 농업개척자이기도 하였다. 두만강을 건너 제일먼저 정착한 곳이 지금의 단강(丹江:레베딘카) 주변이었고, 가구마다 쟁기질을 위한 소와 말이 있었고, 강과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았다는 기록으로 볼 때, 대부분 반농반어가(半農半魚家)로 짐작이 되는데, 당시는 두만강의 일부 줄기가 단강으로 흘렀다는 기록이 있고, 특히 단강(레베딘카)지역과 한마당(라즈돌리네)지역에는 지금도 1937년 강제이주 때 수확하지 못하고 내버려둔 논에서 야생 벼가 자라고 있다. 이후 한인들은 강제이주 되기까지 더욱 북상하여 지금의 핫산 라이온(군:郡)을 벗어나 우수리 평원과 흥개(興凱:항카)평원까지 진출하였고, 이때쯤은 이미 한인들의 인삼(장뇌)재배단지가 야누친스키 지역에 대규모로 조성되었는데, 강제이주 당시 약 600만평(여의도 면적의 7배)이 수확을 못하고 그냥 두고 갔는데, 요즘「시호테알린」산맥에서 발견되는 산삼들이 대부분 60∼70년생인 것으로 보아, 당시의 인삼들이 짐승들에 의해 번식되어 야생화 되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3. 항일 독립투쟁을 향한 한국교회의 투혼이 얽혀 있는 용정땅!
용정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중부에 위치하며, 주도(州都)인 연길[延吉]에서 남서쪽으로 20km 떨어져 있는 상공업도시이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3·13만세운동의 현장(용정중앙소학교)을 비롯하여 1880년경 한국인이 우물을 처음 발견하였다는 용정 기원(起源) 우물이 있다. 두만강의 지류인 해란강(海蘭江)이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며, 주변의 비옥한 농경지에서는 쌀·콩·수수·옥수수·아마(亞麻)·사과·배 등 농산물을 산출한다. 문화유적으로는 비암산의 일송정(一松亭), 3·13반일의사의 묘지, 명동교회, 윤동주 시인의 생가, 문익환 목사의 생가 등이 있다.

4. 두만강을 경계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북한과 중국(조선족)의 마을은 본래 이웃동네요, 한 동네였다.
중국과 북한이 서로 자국 영토의 경계를 긋기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두만강변에 살고 있던 두 국적의 주민들은 서로 왕래하며 품앗이를 할 줄 아는 이웃들이요, 한 마을 구성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가 왕래하기를 꺼려하고 힘들어하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두만강을 따라 철책이 쳐지고 있었다. 이제 이들은 서로를 이웃이라 칭하기에 힘든 사이가 되어버렸다.

5. 얼어붙은 천지의 물이 녹아내리듯 한반도에 화해의 기운이 솟아나기를...
장백산이라 불리는 백두에 올라 이 나라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였다. 5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백두산 천지는 아직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지금의 남북관계처럼.

6. 조상들의 땅을 잃어버린 후예들의 오늘
통화에서 거대한 산맥을 지나자 넓은 분지형 평지가 나타났다. 이곳이 고구려의 발상지 집안이다. 집안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하고 북쪽으로는 바이산시[白山市]·퉁화시[通化市]·퉁화현[通化縣]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집안 맞은 편에 있는 북한의 도시는 만포시이다. 집안은 신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살기 시작했으며 고구려 문화의 발상지이자 고구려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고구려 유리왕이 졸본에서 천도하여 고구려의 수도였던 곳으로 고구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시 중심에는 국내성의 성벽이 남아있고, 위나암성(환도산성)과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릉이 유명하다. 집안에 남아있는 고구려의 고분 원래 약 1만 2000기에 이른다고 하나 현재는 7000개 정도가 남아있다.
현재 집안은 다민족 주거지로서 한족[漢族]이 86.4%를 차지하며 조선족(朝鮮族)·만족(滿族)·후이족[回族]·멍구족[蒙古族]·시버족[錫伯族] 등의 소수민족이 13.6%를 차지한다. 소수민족 중에서는 조선족이 가장 많다.
7. 압수라고 불리는 압록강,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북한의 민둥산들
두만강과는 달리 압록강은 강폭도 상당히 넓고 강도 깊어 보였다. 사극에서 오랑캐들이 압수를 건넜다는 대사를 종종 들었는데, 여기서 압수란 압록강을 의미한다. 조선족 안내인의 말에 의하면 압록강에서는 성인 팔뚝만한 물고기를 잡는 것은 예사라고 한다.
압록강을 끼고 다양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96년까지만 해도 중국 쪽보다 울창했다던 북한쪽 산들이 하나같이 헐벗어 있었다. 그리고 제자리걸음하는 북한사람들의 생활상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드는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들과 이들에게 재미난 구경거리를 주고 돈을 벌려는 중국 상인들의 상술들이 안타까움으로 몰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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